지난 1990년대만 해도 국내 주요 그룹 홍보 담당 임원들의 직위는 상무급에 머물렀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전무, 부사장급으로 격상된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국내 최초의 ‘홍보실 사장’까지 탄생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바로 두산그룹 김진 홍보실 사장(54).
김 사장의 홍보실 사장 선임은 높아진 홍보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다수의 홍보맨들에게 홍보도 ‘높이 올라갈 수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줬다.
무엇보다 20년 이상 홍보 한우물만 파온 ‘홍보쟁이’가 홍보부문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실제로 그는 “홍보에 살고 홍보에 죽는다”는 신념으로 20년 내내 홍보만 생각해온 ‘골수 홍보맨’이다. 직업이 ‘홍보맨’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 김 사장은 1978년 동양맥주(OB맥주 전신)에 입사한 후 83년 8월 두산그룹에 처음으로 홍보실이 신설되면서부터 홍보를 시작했다. 두산그룹 홍보의 산파역, 산증인이다.
이어 97년 오비맥주 이사대우로 임원 뱃지를 단 이후 99년 상무, 2003년 부사장 등으로 승진가도를 달리며 두산 홍보에서 잠시도 손을 놓은 적이 없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격무 때문에 건강이 나빠져 수년전 쓰러지기도 해 그를 아끼는 많은 기업 관계자와 홍보인들을 안타깝게 했던 작도 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복귀해 두산그룹 홍보 최일선에서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다.
특히 김 사장은 지난해 두산가 오너형제인 박용오-용성 전 회장간 경영권 갈등으로 두산그룹이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오랜 홍보 경험에서 나온 노련미와 상황 판단력 등을 최대한 발휘해 이른바 '두산 사태' 위기를 관리하고 돌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동반퇴진한 후 출범한 이른바 ‘두산 8인의 비상경영위원회’에도 당당히 참여, 홍보실의 높아진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평소 ‘발로 뛰는 홍보’ 보다 ‘머리로 하는 홍보’를 강조한다. 현재 두산베어스 사장직도 맡고 있다.
■ 이순동 삼성 전략기획실 부사장
‘홍보의 삼성’ 구축한 홍보의 달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행정대학원을 나온 이 부사장은 흔히 홍보업계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홍보인으로는 처음으로 임원에 올랐으며 2000년 한국PR협회를 결성, 초대회장을 맡아 홍보업계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작업에 열심이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홍보협의회 회장 등도 맡아 홍보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리없이, 조용히 처신하는 겸손이 이 부사장의 미덕이다.
이 부사장은 올해 2월 기업의 위기관리에 대한 논문으로 한양대 신문방송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부사장은 홍보인이 갖춰야 할 기본 자세로 ‘인내’를 든다. 홍보를 하다가 화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참으면 좋은 일이 생기게 된다는 얘기다.
또 평소 “홍보맨은 기자의 성실한 조력자여야 한다”는 말을 자주 강조한다. 특히 기업관련 기사는 홍보담당자가 기자와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에 따라 취재자료 제공에 빈틈없이 충실해야 한다고 후배 홍보인들에게 당부한다. 홍보담당자로서 기자와의 ‘갑을 관계’를 떠나 좋은 기사는 훌륭한 기자와 훌륭한 홍보인이 같이 만드는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 부사장은 언론인 출신이다. 지난 1971년 기독교방송(CBS) PD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 부사장은 1년만에 중앙일보 기자로 옮겼다. 이후 8년간 근무했던 중앙일보를 떠나 1980년에 삼성전자 홍보실 과장으로 들어가 부장, 실장을 거쳐 1991년에 그룹 회장비서실 홍보팀 이사로 승진했다. 이어 회장비서실 상무·전무를 거쳐 부사장에 오르면서 홍보인으로서도 성공 모델이 됐다.
재계 홍보 관계자들은 삼성 안팎의 각종 문제를 일사분란하게 해결하는 대규모 홍보조직을 이끌고 있는 이 부사장을 삼성그룹 CCO 사장감으로 지목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10년 가까운 언론사 경험에다 일찍이 홍보계에 입문, 홍보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온 명실상부한 삼성의 대변인이자 홍보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25년이 넘는 탄탄한 홍보 경력을 바탕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급성장한 삼성그룹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최일선에서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없다는 얘기다.
■ 김광태 삼성전자 전무
20년 이상 ‘삼성’ 알려온 ‘정통 홍보맨’
김 전무의 최대 강점은 올해로 21년째 ‘삼성’을 알리며 홍보 한우물만 집중적으로 파온 정통 홍보맨이라는 것.
연세대 수학과를 거쳐 같은 대학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은 김 전무는 1985년 삼성전관(삼성SDI의 전신) 홍보과장 시절부터 홍보에 손을 댔다. 이에 앞서 1978년 삼성그룹 공채로 삼성전관에 입사해선 홍보 아닌 관리부에서 일을 해왔다.
그러다가 과장 진급과 함께 홍보부서로 자리를 옮겨 부장까지 승진한 뒤 1994년 ‘삼성 홍보 1번지’인 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홍보팀으로 전진배치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홍보 실무를 체험했다.
그는 96년까지 삼성 구조본 홍보팀 부장으로 맹활약했으며 이 기간동안 이순동 홍보팀장 밑에서 현장의 맨투맨 능력을 키우며 삼성의 홍보 노하우를 갈고 닦았다. 현재 삼성전자 홍보팀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안홍진 상무와도 그때 인연을 맺었다. 안 상무는 3년 선배인 김 전무(당시 부장)로부터 홍보를 배운 셈.
급기야 97년 삼성전자 홍보팀 홍보그룹장으로 발탁된데 이어 99년 상무보로 임원대열에 합류했다. 그후 2002년 상무, 그리고 올해초 전무로 오르면서 삼성의 주력기업이자 대한민국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 홍보의 중책을 떠맡았다. 지난 20여년간 줄곧 삼성 홍보라인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웬만한 언론사 기자, 언론인 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다.
지난해 한국PR협회로부터 ‘올해의 PR인’으로 뽑힌 데 이어 올해 11월에는 서울신문이 제정한 ‘서울광고대상-올해의 광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업광고는 기업의 철학과 목표를 대변하고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게 김 전무의 생각이다.
■ 이용훈 현대자동차 부사장
‘글로벌’ 현대車 이미지․브랜드 PR의 ‘첨병’
경기고(70년 졸업)와 서울대 공대 항공공학과(75년 졸업)를 나와 1984년 2월 현대자동차 외자부에 입사한 이 부사장은 20년 이상 현대자동차에서 잔뼈가 굵었다. 홍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외자부장·구매부장·사업기획팀 부장을 거쳐 1995년 1월 홍보담당 이사대우로 발탁되면서 부터.
이후 3년간 홍보실에서 활동하다 98년 1월 기획담당 임원으로 옮겨 대외협력실 이사, 기획총괄본부 기획협력팀 실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시 홍보실로 돌아온 것은 2002년 2월. 이어 그해 8월 홍보 담당 전무로 승진하면서 홍보실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99년 기획담당 이사로서 전북현대 모터스 프로축구단 단장을 겸임하고 2000년 현대자동차 배구단과 전북현대다이너스 축구단 단장을 맡아 스포츠를 통한 회사홍보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 부사장은 20여년간 현대차 발전과정에 직접 몸 담아온 산증인으로서 현재 현대차의 대외 이미지 개선과 글로벌 기업으로의 위상 강화에 홍보력을 집중하고 있다.
가끔 정몽구 회장의 해외출장 길에도 동행, 해외 현지 언론과 활발히 접촉하며 홍보활동을 펴기도 한다. 이미 현대차의 중국, 인도, 미국 공장 기공식 때 정 회장을 수행, 글로벌경영을 현장에서 뒷받침하기도 했다.
이 부사장의 능력은 지난 2002년, 2006년 월드컵 때 입증됐다. 세계 최대 스포츠행사인 월드컵에 현대차가 공식 스폰서업체로 참여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 막대한 유형 무형의 기업 PR효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4년 ‘아름다운 가게’와 공동으로 재활용품을 수집, 판매한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현대자동차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토요일’, 전국 주요 지역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과 공동으로 결식아동 및 노인들을 돕기 위한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 등을 펼친 것처럼 공익사업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에서 열린 정부혁신 세계포럼 때 각국 정상 및 국제기구 대표에게 의전용 차량 100여대를 지원하고 같은 해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21개국 정상과 정부 대표, 기업인 행사에 430여대의 차량을 지원, 현대차의 글로벌 기업이미지를 부각시킨 활동도 빼놓을 수없다.
이 부사장은 현대차 신모델이 나올 때마다 각 브랜드 특성과 글로벌기업을 강조하는 광고에도 힘을 쏟고 있다.
■ 정상국 LG 부사장
‘준비된 홍보맨’ 강조…‘전략적 홍보’로 승부
이어 1998년 LG 구조조정본부 홍보팀장(상무), 2003년 부사장(LG그룹 홍보팀장)에 올랐고, 지난해 말부터는 LG전자 홍보팀장을 겸임하는 등 자타공인 LG 홍보의 핵심인물이다.
탁월한 논리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략적인 홍보를 한다는 평. 각종 현안 이슈를 분석, 요약정리해 알기쉽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선 취재기자 중심의 홍보를 강조하는 CCO로 평가받고 있다.
정 부사장은 기업홍보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 기업의 인지도와 호감도, 신뢰도를 높여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향상시킴으로써 사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특히 환경 분석을 통해 현상을 인식한 후 현실에 바탕을 둔 중점과제와 목표를 설정하고 선택과 집중에 따라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추진하는 전략적 홍보를 강조한다.
앞으로 ‘홍보맨’은 단순히 홍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경영 전반에 관한 폭넓은 식견과 지식 정보, 그리고 철저한 논리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홍보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출 것을 주문하곤 한다. 이제는 홍보가 창의적 경영활동의 한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홍보맨 각자가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CEO의 전략수립과 실행을 위한 눈과 귀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가치와 브랜드 자산가치를 높이는 브랜드 홍보, IR적 홍보 등 종전의 PR 영역을 넘어 서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LG PR조직의 역량 제고를 위한 교육과 홍보인들의 자기계발을 잊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사회현상과 매일매일 새롭게 전개되는 주요 이슈에 대해서도 그냥 흘려 버릴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누구에게나 철저하고 정교한 논리를 바탕으로 자기 주장을 명쾌하게 펼 수 있어야 한다고 사원들에게 당부한다.
정 부사장은 홍보기획에도 일가견이 있다. 지난 91~94년 5년간 국내기업 최초로 매년 4월 한달을 ‘고객의 달’로 정하고 대대적인 고객 캠페인을 전개함으로써 ‘고객중심의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95년에도 ‘럭키금성’에서 ‘LG’로 그룹명을 바꾸는 CI 개편작업 실무책임을 맡아 LG 이미지를 젊고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98년 IMF 이후 LG구조조정본부 홍보팀장시절에도 LG구조조정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언론에 쉽고 정확하게 브리핑하는 솜씨를 발휘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3년 3월 국내 대기업 최초의 LG 지주회사 출범을 전후해서도 당시 생소했던 지주회사개념과 지주회사체제 전환 이후의 경영투명성, 지배구조 개선효과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역할을 한 주역이기도 하다.
정 부사장은 올해 ‘오늘 만나는 내일’이라는 슬로건 아래 LG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가 투영된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 이 캠페인을 통해 새로운 생각과 창조적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차별화되고 앞서가는 생활 가치를 제공하는 LG의 위상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 2001년부터 매년 10여 차례 LG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기업경영에 있어 브랜드의 중요성을 전파하기 위한 브랜드교육 강의도 직접 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이공계 대학생들에게도 LG브랜드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PR협회 부회장, 전경련 산하 경제홍보협의회 등 주요 홍보단체의 요직을 맡아 홍보인과 언론계의 상호 이해증진은 물론 홍보 광고 등 PR계 전반의 발전에 힘쓰고 있다.
■ 권오용 SK 기업문화실 전무
‘마당발’ ‘위기관리의 명수’…‘아이디어맨’ 별칭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와 런던 포린 트레이드스쿨 상학 과정을 마친 권 전무는 지난 1980년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1990년대초 전경련에서 처음으로 홍보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국제경제실장을 거쳐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홍보 업무에 뛰어들어 기획홍보본부장·홍보팀장·홍보본부장을 거쳐 2년 만에 상무 자리에 오르는 등 전경련에서 잔뼈가 굵었다.
3개월여 짧은 임원 자리를 끝으로 전경련을 떠난 그는 금호아시아나그룹 홍보담당 상무로 옮겼다가 다시 2000년 5월 KTB네트워크 홍보 상무로 건너가 전무까지 지낸 바있다. 그리고 2004년 4월부터 SK그룹의 홍보 사령탑을 맡아왔다.
그는 웬만한 경제전문가에게 뒤지지 않는 경제경영 지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경련 시절 영국과 일본 경단련에서 파견근무한 경험이 있어 국제감각도 뛰어나다. 그런 탄탄한 기본 실력을 갖췄기에 2004년 SK그룹이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로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을 당시 이를 극복하는 전위 참모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는 평이다.
실제로 권 전무는 당시 사기가 떨어져 있던 그룹 임직원들에게 위기를 극복할 수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사내 커뮤니케이션활동에 역점을 뒀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전 임직원이 사회공헌과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 동참하도록 함으로써 이를 전사적 기업문화로 정착하도록 한 것이 단적인 사례. 최 회장이 전 사업장을 돌며 현장 직원들을 독려하는 스킨십 경영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권 전무는 또한 실추된 SK그룹의 이미지를 되돌리기 위해 하루 중 3분의 2의 시간을 언론계 등 사회 각계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직접 만나 ‘왜 SK를 살려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한편 외부에서 들은 이야기를 SK 내부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가교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같은 권 전무의 노력에 힘입어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룹 이미지 또한 2004년 SK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있었다는 것.
이처럼 아이디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그의 별명도 ‘아이디어맨’이다. 또한 홍보담당자들에게 혁신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하는 의미에서 매달 1회 ‘PR슈펙스’를 열어 홍보에 대한 각자의 혁신활동 사례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주재하고 있다.
재무부장관 표창과 OECD 가입 공로로 경제부총리 표창을 받기도 한 권 전무는 홍보 관련 서적인 ‘제5의 경영 자원-기업 홍보, 사람들’을 발간하는 등 4권의 서적을 펴낸 바 있다.
■ 윤석만 포스코 사장
각계에 폭넓은 인맥 구축…대외활동 활발
‘포스코의 입’으로 통할 정도로 홍보 무대에서 이름을 떨치다가 올해 2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대외관계에 대한 그의 활동 폭이 넓어짐에 따라 김상영 상무가 홍보 전담 임원으로 열심히 보필하고 있다.
윤 사장은 홍보업계에서 잘 알려진 학구파다. 인천고와 중앙대 행정학과(67학번) 출신으로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거쳐 중앙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홍보업계에서 인맥이 두텁기로 소문난 연세대와 중앙대를 함께 거쳐 풍부한 인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윤 사장의 강점이다. 홍보업계의 ‘양대 산맥’을 두루 경험한 탓에 그만큼 대인관계가 넓다.
현재 중앙대 출신 기업 홍보맨들의 친목모임인 ‘중홍회’를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윤 사장은 지난 1974년 포스코에 입사, 1986년 홍보부장에 올랐다. 이후 행정관리부·제품기획부·열연판매부 부장을 거쳐 1994년 상무 자리에 올라 4년 8개월간 근무하다가 계열사 포스틸 상무로 옮겨 전무로 승진했다. 3년여의 외도 끝에 포스코 전무로 복귀한 그는 2004년 3월 마케팅 및 홍보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 재계 ‘홍보 부사장’ 대열에 합류했다.
윤 사장은 한때 박태준 전 회장이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예기치 않았던 ‘정치 회오리’에 말려들어 고전하기도 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30년 넘도록 포스코와 동고동락해 온 윤 사장을 ‘포스코 역사의 산 증인’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외적으로 한국금속캔재활용협회 회장·한국행정학회 부회장과 한국철강협회 스틸컨스트럭션센터 회장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은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한국 정치의 구조와 진로’ ‘우울한 세상과의 따뜻한 대화’ 등 4권의 저서도 냈다.
■ 장일형 한화 부사장
매사 ‘꼼꼼’…“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홍보” 앞장
하지만 매사 적극적이고 철저한 업무 처리로 홍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그를 한화그룹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작년 8월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부사장 겸 홍보팀장으로 영입되면서 홍보인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
장 부사장은 한화그룹 홍보사령탑으로 기존 한화의 홍보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금 더 깊이있게 생각하고 고민함으로써 홍보의 밀도를 높였다”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일처리로 홍보 관리력을 향상시켰다”는 홍보팀 내 반응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의 표면적인 공적으로는 한화그룹의 뉴 CI 제정 및 브랜드 개편을 꼽을 수있다. 장 부사장은 부임이후 그룹 체질의 변화를 바라는 김승연 회장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고 김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브랜드전략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한화그룹이 내년 창립 55주년을 맞아 본격 적용할 ‘한화 트라이서클’이란 뉴 CI다. 트라이서클은 신뢰, 존경, 혁신을 뜻하는 3개의 원이 교차된 형상으로 한화의 3개 사업부문(금융, 제조건설, 유통레저)이 상호 시너지를 형성해 세계 수준의 글로벌 기업으로 무한 발전한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장 부사장은 “뉴 CI 발표를 계기로 그룹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사적인 통합커뮤니케이션 활동에 본격 나설 것”이라며 “이에 발맞춰 내년초부터 TV 신문 인터넷 옥외광고 등 4대 매체를 통해 광고와 홍보를 적극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장병수 롯데 전무
20년 기자경력…‘상황판단ㆍ추진력’ 탁월
장 전무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2001년 롯데쇼핑 홍보담당 이사로 영입됐다.
그는 경북고(70년 졸업)와 서울대 정치학과(76년 졸업)를 나와 79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동아일보에서 주로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뛰며 이름을 날렸으며 사회부 차장(94년), 사회2부장(97년)을 거쳐 심의위원(98년)을 끝으로 20년간의 기자 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롯데그룹 대변인으로 변신하며 홍보와 인연을 맺은 것.
정계와 재계, 언론계에 걸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경력 때문이다.
롯데그룹 홍보를 본격적으로 맡은 것은 2002년부터이며 2003년 상무(기업문화실장)로 승진하고 올해 2월 정기인사에서 전무에 올랐다.
장 전무는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장남으로 후계자인 신동빈 부회장의 측근 중 한명으로 꼽힌다. 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롯데쇼핑 상장 등 그룹의 중요 현안에 대한 홍보를 성공적으로 전개해 왔다. 또 평소 신 부회장과 가까운 거리에서 많은 대화나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것.
상황 판단력은 물론 추진력과 돌파력이 뛰어나다. 많은 생각을 하지만, 일단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성사될 때까지 과감히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홍보실 부하 직원들에게도 “이제 술 마시며 홍보하던 시대는 지났다. 상황판단력을 키우고 실력으로 홍보하라”는 말을 강조한다.
이들 외에도 장성지 금호아시아나 전무, 엄성룡 효성 전무, 손광영 현대건설 전무, 김봉경 기아자동차 전무, 김상욱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전무, 이은욱 유한킴벌리 전무, 장상인 팬택계열 전무, 이만우 SK(주) 상무, 조중래 SK텔레콤 상무, 최영택 코오롱 상무, 성장경 남양유업 상무, 유석오 KTF 상무 등도 오랜 기간 홍보일선에서 뛰고 있는 홍보 베테랑들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