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한장면
■ 6.25전쟁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남한과 북한이 싸운 전쟁. 미국, 소련, 중국도 이 전쟁에 참여했으며 다른 이름으로 ‘한국 전쟁’이라고도 불림.
6·25의 경과 및 결과 - 전쟁이 남긴 상처...
1. 북한군의 진격 (1950.6.25.)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38 도선 전 지역에서 총공격을 시작했어. 그 전에도 38 도선 부근에서 종종 크고작은 군사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 시민들은 ‘38 도선에서 또 전투가 벌어졌나 보구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 그 사이 북한군은 서울을 향해 밀고 내려왔어. 전투가 시작된 지 사흘 만에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되었어.
2. 유엔군의 참전 (1950.7.17.)
마음이 다급해진 이승만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어. 미국은 빠르게 남한에 군대를 보냈고, 유엔을 움직여 유엔군도 보냈지. 미군이 개입했지만 남한군과 미군은 낙동강까지 밀렸지. 그러다 9월 15일 새벽, 미군이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면서 9월 28일에는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어. 서울에 돌아온 이승만 정권은 내친 김에 북진 통일을 이루려고 했어. 1950년 10월 1일 북진을 시작한 남한군과 유엔군은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하고, 10월 26일 압록강에 이르렀지
3. 중공군의 개입 (1950.10.25.)
압록강까지 밀린 북한군이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자, 중국은 18만 명의 중국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었어.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었지. 12월 10일 평양이 다시 중국군의 손에 들어갔고, 1951년 1월에는 서울이 다시 북한군의 손에 들어갔어. 그러나 남한군과 미군은 우월한 무기를 앞세워 다시 북한군을 몰아붙였고, 3월 5일에 서울을 되찾았어.
4. 38 도선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전투 (1951.3 ~ 53.7.27)
1951년 3월, 38 도선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어. 전쟁 1년 만에 전선은 다시 최초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거야. 남북한은 물론 미군이나 중국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휴전의 필요성을 느꼈지. 2년 동안 계속 휴전 회담이 이뤄지고 있는 동안에도 산봉우리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계속되었어. 그 전의 전투에 비해 이 시기의 전투가 가장 치열해서 사망자도 많았지. 결국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맺어졌고, 맞서 싸우던 전선은 휴전선이 되었어.
(출처: 네이버 지식사전)